1946년부터 매년 칸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와 칸 마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알프 마리 팀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영화제는 프랑스의 다른 쪽 끝에서 개최될 뻔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선택이 이루어졌을까요?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베니스 영화제가 세계 유일의 국제 영화제였던 1938년 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해, 6회째를 맞이한 베니스 영화제에서 <레 디외 뒤 스타드>가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레니 리펜스탈의 나치 선전 다큐멘터리는 아리안족의 신화를 다룬 작품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압력으로 수상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참가국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프랑스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축제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스트라가 열리는 베니스와 동등한 수준의 도시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여러 후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엑 레뱅, 르 투케, 도빌, 비시 등이 후보에 올랐죠. 하지만 비아리츠와 칸이라는 두 도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바스크 해안의 해변 휴양지가 선택되었지만, 축제 시작 3개월 전에 칸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훨씬 더 높은 보조금을 제시하며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따라서 1939년 5월 31일에 개최지가 선정되었고, 8월 31일부터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에디션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1946년이 되어서야 칸 페스티벌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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