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은 1903년 1월, 2호선 북쪽 구간인 앙베르와 바뇰레 구간이 개통되면서 운행에 들어 갔습니다. 처음에 이 역의 이름은 전투 역이었는데, 이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전투 광장에서 정기적으로 동물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위키백과에 따르면). 1945년 8월 19일이 되어서야 같은 이름의 무장투사이자 레지스탕스였던 파비앙 대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파비앙 대령'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919년 파리에서 태어난 파비앙 대령으로 알려진 피에르 조르쥬는 프랑스 공산당 활동가이자 레지스탕스 전사였습니다. 1936년 17세의 나이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그는 프랑스가 독일 점령하에 있을 때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곧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1941년 프랑스 공산당 내 최초의 무장 단체인 '주네스 공산당'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그는 1941년 8월 21일바르베스 지하철에서 점령군에 대한살인 공격의 주범 중 한 명으로, 며칠 전 공산 무장 세력의 처형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군 병사 알폰스 모저를 살해했습니다.
1944년 8월, 현재 파비앙 대령으로 알려진 피에르 조르주는 파리 해방에 참여하여 프랑스군과 연합군의 일원으로 점령군과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1944년 12월, 파비앙 대령은 조사 중이던 지뢰가 뮐루즈 근처에서 폭발하면서 사망했습니다. 레지스탕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의 딸 모니크는 2009년 파비앙 대령의 사후를 다룬 책 <파비앙 대령은 나의 아버지였다>(Le Colonel Fabien était mon père)를 썼습니다. 이 광장과 지하철역은 1945년 그의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