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8월 9일, 빅 베르사가 파리 상공에서 마지막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3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4개월 동안 파리 시민들은 전례 없는 크기와 사거리를 자랑하는 이 독일군의 포 탄을 쉴 새 없이 맞아야 했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다른 곡사포에 이 이름을 사용했지만 프랑스인들은 '빅 베르사'라는 애칭을 붙였는데, 독일 엔지니어 라우젠베르거와 산업가 크루프가 설계한 이 파리캐논은 길이 34미터, 무게 750톤, 사거리 128킬로미터로 당시 최대 사거리의 4배에 달하는 대포였습니다.
파리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프랑스 정부의 항복을 강요하기 위해 고안된 진정한 심리전의 무기였던 빅 베르사는 4개월 동안 파리와 주변 지역(판틴, 반베, 샤티용수바뉴)을 367회 폭격하여 256명이 사망하고 62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포격이 시작된 첫날에는 매 30분마다 한 발씩 3일 동안 58발의 포탄이 파리에 떨어졌습니다. 1918년 3월 29일, 아이즈 크르피의 몽 드 주에에 있던 파리지앵 카노네가 파리 4구에 있는생 제르베 생 프로테 교회에 포탄을 발사해 금고가 무너지고 성금요일 예배를 위해 교회에 모인 91명의 파리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빅 베르사의 폭격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50만 명의 파리 시민을 수도에서 몰아냈지만, 빅 베르 사는 전쟁에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독일군은 1918년 8월 9일 작전을 종료했습니다 .